황야의 종말
2025-07-01
# 프롤로그
맥지한은 검사와 신의 전투를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신은 여섯개의 거대한 팔로 사정없이 검사가 있는 곳을, 아니 검사가 있던 곳을 사정없이 내리쳤고 검사는 매번 스치는 듯한 간격으로 아슬아슬하게 미끄러지듯 구르며 피했다. 팔 하나로 한곳을 내리치면 마치 다음에 검사가 어디로 구를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다음 팔이 바로 육중한 힘으로 다음 지점을 타격했다. 신의 공격 하나 하나를 겨우겨우 피해넘기는 검사는 무척 버거워 보였지만 단 한번의 공격도 맞지 않고 매번 기적적으로 피하는 모습이었다. 검사의 움직임은 마치 유령,
소설중편판타지
손
202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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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어둠은 시야의 가장자리를 맴돌았다. 없는 듯 하다가도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하면 바퀴벌레처럼 사방에서 몰려와 마지막 빛의 영역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그럴 때면 예외없이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고개 오른쪽에도 신경이 쓰였다. 시간이 갈수록 글을 잇기가 어려워지고 있었다. 바로 전의 두 문단을 벌써 네번째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조심스런 곁눈질로 모니터 오른쪽 상단의 시간을 보니 새벽 5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앞으로 4시간 안에 이 원고를 마쳐야 한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습관적으로 고개가 오
소설단편공포
재키
2023-07-22
Jacqueline Paper.
회계사, 뉴욕, 석사 학위, 필라테스 수업, 싱글 등이 그녀의 앞이나 뒤를 종종 수식하는 말들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그녀를 재키라고 불렀다.
재키의 책상은 책상의 표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온갖 서류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재키는 그와중에 그녀에게 필요한 것들을 항상 귀신같이 잘 찾아냈기 때문에 별로 정돈하고 싶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유일한 문제라면 그녀의 책상에 오는 사람들에게 조금 창피하다는 점 정도일까.
화요일은 재키에게 가장 바쁜 날이었다. 이번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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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
2019-12-27
아내의 장례식에선 내내 조문객들이 북적였네. 멀리 시골에서까지 친구, 친척, 지인들이 찾아와 조문을 했는데, 평소 사교성이 좋았던 아내였기에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 자네의 내세관이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떠난 사람을 좇아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는 사실에 나는 조금 회의적이었던것 같네. 장례식이라고는 해도 그곳엔 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이는 것만으로 발생하는 어떤 활력같은것이 있었네. 아마 아내는 그쪽을 더 좋아했을것 같긴 해. 그리고 딱히 특이할만한 점은 아니네만, 조문객들에게는 일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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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리
2019-04-30
불현듯 내 앞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녀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논리적으로만 생각하려고 하는 나를 뜻밖에도 괴롭힌 그것은 모종의 이질감이었다. 나의 감이라는 것이 맞았던 적이 별로 없기도 하거니와, 애초에 감이라는 것은 그저 자기중심적 심리와 우연이 합쳐진 일종의 자기과신이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콕 집어 말할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이상한 점이 그녀에겐 있었다. 가령, 립스틱을 저렇게 짙게 바르고 커피잔에 입술을 대는데도 어째서 립스틱이 옅어지지 않는것일까? 아니,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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